삼성전자가 글로벌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인 ‘RE100’에 가입하면서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.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%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캠페인이다.
28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적고, 관련 인프라가 부족해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RE100에 나서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거란 우려가 나온다.
그래픽=신재민 기자 shin.jaemin@joongang.co.kr
삼성전자는 그동안 친환경 경영을 주도해왔지만 2020년대 이후 본격화한 글로벌 탄소 중립 움직임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왔다. 미국·유럽 등 고객사 요구에 맞추기 위해선 RE100 가입이 필수 선택이었으나 국내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는 후문이다.
익명을 요구한 에너지 전문가는 “삼성전자가 준비를 마치고도 RE100 가입 시기를 저울질했던 것으로 안다”며 “특히 새 정부가 2030년 신재생에너지 목표를 기존 30.2%에서 21.5%로 하향 조정하면서 고민이 깊었을 것”이라고 전했다.
실제로 삼성전자는 미국·유럽·중국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사용률 100%를 달성했지만, 유독 국내 사업장에서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.
그래픽=신재민 기자 shin.jaemin@joongang.co.kr
에너지 컨설팅업체 ‘에너데이터’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전기 생산량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8.6%에 그쳤다.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(0.1%)·쿠웨이트(0.2%)·알제리(0.8%)·이란(2.3%) 등이 최하위권이고, 그다음이 대만(6.5%)과 한국이다.
지난해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만3096GWh(기가와트시)인데, 삼성전자·SK하이닉스·현대제철 등 산업용 전력 사용 상위 10개 기업의 사용량에 미치지 못한다. 〈그래픽 참조〉
RE100 이행 방법으로는 ▶신재생에너지 직접 생산 ▶녹색 프리미엄(전기료에 추가 요금을 내면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간주) ▶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(REC) 구매 ▶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가 생산한 전력을 전기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전력거래계약(PPA) 등이 있다.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RE100 달성을 위해 국내에서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REC나 녹색 프리미엄 구매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.
실제로 지난해 삼성전자 국내 사업장은 녹색 프리미엄 제도를 통해 490GWh를 구매했는데, 국내 사업장에서 사용한 전력량(1만8412GWh)의 2.6%에 불과하다.
RE100을 추진 중인 대기업 관계자는 28일 통화에서 “삼성전자가 국내 신재생에너지 사용량을 1%만 늘려도 REC 가격이 더 올라 산업계 전반에 혼란이 발생할 것”이라고 말했다. 실제 지난해 1 REC 평균가는 3만4667원이었지만 올 1월 4만6211원, 지난달엔 6만2160원까지 치솟았다. 여기에 삼성전자 등이 REC 구매에 가세하게 되면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 예상이다.
이근대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“미국·유럽의 경우 화력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발전 원가가 같아지는 시점을 이미 넘어서 신재생에너지 의무 비율을 늘려도 부담이 거의 없다”며 “한국과 일본은 여건이 좋지 않은데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, 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”고 지적했다.
전력도매가격(SMP) 상한제까지 시행되면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지금보다 더 위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. 정부는 한전의 전력 구매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발전사 판매가 인상 폭에 상한을 두는 SMP 상한제를 추진 중이다.
PPA도 한전이 사실상 국내 전력망을 독점하고 있는데, 신재생에너지 구매 때 한전이 전력망 사용료 등 부대비용을 받아가 이를 더하면 요금이 두 배 가까이 뛴다.
김경식 고철연구소장은 “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송·배전망을 개방하고, 정부가 소매 경쟁을 허가해야 한다”고 지적했다. 이어 “민간 사업자 간 경쟁이 가능해지면 ESS(에너지저장시스템) 관련 투자도 늘고 기술도 향상될 것”이라고 짚었다.